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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친호흡 몰아쉬며 ^^ 굽이치는 산맥넘어 손의 자유, 발의 자유, 정신의 자유를 찾는다. 기억은 희미해지기에 이곳에 기록을 남긴다
MTB등산여행

흥법사지의 가을

by 한국의산천 2011. 9. 14.

흥법사지의 가을 [2011년 9월 14일 수요일]

출장중에 잠시 돌아 본 원주 문막 흥법사지.

제가 애용하던 똑딱이 카메라는 라이딩 중에 추락을 많이하여 액정도 나가고 현재 상태가 매우 않좋습니다. 아래 이미지는 스마트폰으로 촬영했습니다.   

 

▲ 섬강교를 지나며 ⓒ 2011 한국의산천

▲ 추석 연휴의 다음날이지만 영동 고속도로는 한산합니다 ⓒ 2011 한국의산천

 

28681 

완행열차 - 한영애

특급 열차 타고 싶지만 왠지 쑥스러워서 완행 열차 타고서 간다 그리운 고향집으로
차가운 바람 맞으니 두 눈이 뜨거워지네 고향으로 가는 이 마음 이 기차는 알고 있겠지
말 못할 설움과 말 못할 눈물은 차창밖에 버리고 가자

 

▲ 하늘색이 너무 좋아

 

  하늘색이 너무 좋아 집사람에게 전화를 했다.

" 응... 나 지금 원주 가는 길이야 . 당신 이번 추석 준비와 아버님 제사 준비하느라 수고 많이 했어, 고마워 "    

 

▲ 섬강 풍경. 앞으로 보이는 소금산 그 안에 간현유원지가 자리하고 있다 ⓒ 2011 한국의산천

 

흥법사지는 아직 발굴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가운데 사지 대부분이 민간인의 소유로 되어 있으며 주변에는 밭이 들어서 있다 . 석탑(보물 제464호)이 쓸쓸히 주인없는 폐사지를 지키고 있다.

 

현재 절터 주변은 모두 경작지로 변했다. 흥법사지는 절은 흔적조차 없이 사라지고 삼층석탑과 진공대사 탑비만이 남아있다. 자리를 잘 잡은 지형에 절터만 봐도 옛날 거대사찰이 있었던 곳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흥법사지 앞쪽으로는 남한강의 지류인 섬강이 흐르고 뒤쪽으로는 영봉산 자락이 펼쳐져 있다. 이곳에는 진공대사부도비의 귀부와 이수가 있으며 진공대사는 신라 말기 구산선문 중의 봉림산파에 소속된 스님이었다.

 

진공대사가 당나라에서 유학하고 돌아오자, 새로 나라를 연 태조 왕건이 대사를 왕사로 임명하고 극진히 예유하고 이곳 흥법사를 중건해주었다고 한다. 이때부터 흥법사는 흥법선원이 되고 선수행을 닦기 위해 찾아오는 스님들이 수백명에 이르렀다 전한다. 

 

그러나 이 절이 언제 없어졌는지는 모르나 조선시대 전기까지 절과 진공대사탑에 관한 언급이 있는것으로 보아 임진왜란때  폐사가 된것으로 보이며 약 만여평에 달하는 흥법사지 옛터는 모두 밭으로 변했다.  현재는 삼층석탑과 진공대사 부도비의 귀부와 석물들이 있다.

 

 

- 진공대사탑비 귀부 및 이수(보물 제463호)
- 흥법사지 3층 석탑(보물 제463호)
- 흥법사지(문화재자료 제45호)  

 

 

현재 절터 주변은 모두 경작지로 변했다. 이곳에는 삼층석탑(보물 464), 진공대사탑(보물 365), 진공대사탑비, 전흥법사염거화상탑(국보 104) 등이 있었으나 현재는 삼층석탑과 진공대사탑비의 귀부 및 이수(보물 463)만 남아 있다. 일제강점기인 1931년 염거화상탑은 서울의 탑골공원으로 옮겨지고 진공대사탑과 진공대사탑비의 비신(碑身)은 일본으로 반출된 것을 되찾아 지금은 3점 모두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떡을 주물러 이렇게 만들기도 힘들것 같은 조각을, 단단하고 커다란 바위에 조각을 했다는것이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부드럽고 꿈틀거리듯 살아있는 느낌을 준다. 

진공대사탑과 진공대사탑비의 비신(碑身)은 일본으로 반출된 것을 되찾아 지금은 3점 모두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여주 고달사지에 있는 귀부와 비슷하나 규모는 좀 작다.  

 

※ 진공대사 부도(보물 제365호)는 현재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에 세워져 있다.

 

▲ 흥법사지에 남아있는 진공대사탑비 귀부 및 이수(보물 제463호) ⓒ 2011 한국의산천

▲ 여주 고달사지 원종대사 혜진탑비 보물 제6호(2005. 7. 19 촬영) ⓒ2011 한국의산천

 

▲ 흥법사지 삼층석탑(보물 464) ⓒ2011 한국의산천

 

텅 비어있는 곳에 가득한 충만함

눈에 보이지 않아도 존재한다는것은 우리가 어렸을때부터 술래잡기를 하며 배웠다.  

지금은 폐사지가 되어 너른 터에 가을걷이가 한창이며 풀이 널리 깔려있지만 번성했던 그 예전의 영화가 한눈에 느껴지는 곳이다.  

비어있기에 채울 것이 더 많아 충만한 곳이라면 너무 언어의 비약일까?

 

 

흥법사지

1984년 6월 2일 강원도문화재자료 제45호로 지정되었다. '고려사'에는 937년(태조 20) 당시 왕사(王師)였던 진공대사 충담(忠湛)이 입적하자 940년 진공대사(869~940)의 부도탑이 있는 원주 영봉산(靈鳳山) 흥법사에 태조가 직접 비문(碑文)을 지어 진공대사탑비를 세웠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흥법사가 신라 때부터 있던 사찰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흥법사의 폐사에 대해서는 기록이 없어 알 수 없지만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으로 추정된다. 

 

 

드넓게 펼쳐진 파란하늘 푸른 창공과 흰구름

내 마음도 흰구름처럼 설레임이 뭉게 뭉게 피어난다. 

 

아!

머물 수 없는 청춘과 아름다운 날들이여  

 

▲ 파란하늘 흰구름... 아 좋다 가슴이 시원하네 ⓒ 2011 한국의산천

 

어제는 달리기위해 자징거를 타고 열심히 달렸다

오늘은 업무를 위해 차를 타고 열심히 달렸습니다

 

살아서 자전거 페달을 굴리는 일은 얼마나 행복한가

 

'자전거를 타고 저어갈 때, 세상의 길들은 몸 속으로 흘러 들어온다.

땅 위의 모든 길을 다 갈 수 없고 땅 위의 모든 산맥을 다 넘을 수 없다해도,살아서 몸으로 바퀴를 굴려 나아가는 일은 복되다’.

 

“구르는 바퀴 위에서, 바퀴를 굴리는 몸은 체인이 매개하는 구동축을 따라서 길 위로 퍼져나간다.

몸 앞의 길이 몸 안의 길로 흘러 들어왔다가 몸 뒤의 길로 빠져나갈 때, 바퀴를 굴려서 가는 사람은 몸이 곧 길임을 안다.”

 

'자전거를 타고 저어갈 때, 몸은 세상의 길 위로 흘러나간다. 구르는 바퀴 위에서 몸과 길은 순결한 아날로그 방식으로 연결되는데, 몸과 길 사이에 엔진이 없는 것은 자전거의 축복이다. 그러므로 자전거는 몸이 확인할 수 없는 길을 가지 못하고, 몸이 갈 수 없는 길을 갈 수 없지만, 엔진이 갈 수 없는 모든 길을 간다.' -자전거 여행中에서 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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