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노래] 한곡 / 가시나무 / 작사 하덕규 노래 조성모
장호 시선집에서 詩 하나 / 암릉에 앉아
가시나무
내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
내속엔 헛된 바램들로
당신의 편할 곳 없네
내 속엔 내가 어쩔 수 없는 어둠
당신의 쉴 자리를 뺏고
내속엔 내가 이길 수 없는 슬픔
무성한 가시나무 숲 같네
바람만 불면 그 메마른 가지
서로 부대끼며 울어 대고
쉴 곳을 찾아 지쳐 날아온
어린 새들도 가시에 찔려 날아가고
바람만 불면 외롭고 또 괴로워
슬픈 노래를 부르던 날이 많았는데
내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서
당신의 쉴 곳 없네
▲ 설악 '한편의 詩를 위한 길' 을 오른 후 노적봉 정상에서 ⓒ 2010 한국의산천
岩陵에 앉아
- 章湖-
땀을 뒤집어 쓴 어느 암릉에 앉아
소금 한점을 혀끝에 올려 놓고
발 아래 골짜기에 타오르는
타오르는 빛의 조각들을
내다보고 있노라면
소금은 이미 혀 끝에 없다
타지 않는 빛이 쓰레기의 더미에 지나지 않듯이
녹지 않는 소금, 오를 줄 모르는 발은 모레나 다름 없다.
오르고 오른 끝에
자일에 의지하여 몸을 날리는,
산을 높이기 위하여 땅바닥에 내려서는 사람아,
소금같이 살다 갈 수는 없을까,
세상을 불 밝히기 위하여
스스로 태우는 빛과 같이
씨앗 하나를 제 몸 밖으로 내어보내기 위하여
스스로 높은 가지 끝에서 떨어질 줄 아는
아,
가을 능금같이 [章湖 詩選集 에서]
▲ 문경 수리봉 릿지 촛대바위에서 ⓒ 2010 한국의산천
힘겹게 산을 오른 후 더 올라설 곳이 없다고 느꼈을 때 그때는 어디를 가고 싶게 될까? 하늘로 오를 것인가? 정상의 마지막 바위 끝에는 하늘문을 여는 빗장이 놓여 있는가? 우리는 그 빗장의 문고리를 잡기위해 끝이 보이지 않게 반복되는 길고 긴 산행의 장막을 한겹 한겹 헤치고 있는지 모른다.
자일에 의지하여 몸을 날리는, 산을 높이기 위하여 땅바닥에 내려서는 사람아,
▲ 한국의산천 팀 ⓒ 2010 한국의산천
사춘기 까까머리 학창시절, 우울했던 젊음을 배낭에 넣고 산행을 같이 했던 岳友들... 그들중에는 대부분 산을 떠나 사회에 안착하고 살거나 또 다른 취미 생활을 하고 있지만 일부 친구들은 아직도 산으로의 끝나지 않은 여정을 계속하고 있다.
그려 진짜 산꾼은 산에 집착하지 않는다. 산은 이미 우리들의 가슴에 들어와 있지 않은가. 산 자체로부터 초월해 있지 않다면 산을 오르는 행위는 가치없는 일이다.
내가슴에 존재하는 산 정상에 올라 하늘로 통하는 문의 빗장을 열수있을까? 그래 사람은 각자대로 운명의 길을 살아갈 따름이다.
▲ 산마루에서 헤어진 그 사람은 아직도 그곳에서 기약없이 불어오는 바람으로 남아 있을까? ⓒ 2010 한국의산천
'한편의 詩를 위한 길' 출발점 부터 앞서거니 뒷서거니 같이 올랐던 대전팀 파티. 노적봉 정상에서 한컷
▲ 아 ~! 앞에 보이는 하늘로 솟구치는 저 능선을 올랐단 말인가? ⓒ 2010 한국의산천
일탈을 꿈꾸는 가을
이 가을 바람도 마음을 채워주지는 못하고 허허로울뿐 어떤것으로도 담아낼수없는 부질없는 일상의 생활에서 시간만 나면 오직 산만을 갈구하는 길고 긴 꿈을 꾸게 된다. 미련을 둘 곳도 부재하다.
나이가 들어 결혼을 하고 가정을 갖게되면 사람들은 원하던 원치않던 울타리를 갖게된다. 세월이 지나면서 울은 높아지고 두터워간다.
여자는 울타리 속에 영원히 남자를 가두려 하고 남자는 한사코 그곳을 뛰어 넘으려 한다. 가정에 대한 저버릴수없는 끈끈한 집착은 순수한 애정과 피할길 없는 의무가 혼합되어 남자의 목덜미를 휘어잡고 있는 셈이다.
가정은 모든것을 만들어내는 가능성을 지녔지만 또한 동시에 하고자 하는 어떤것도 단념하게 하는 제약성도 갖는다. 길들여 지지 않는 자는 부단히 담을 부수려 든다. 그리하여 거침없이 광야로 내달리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山 만이 결국 세상의 속박으로 부터 벗어나게 해서 人間이 궁극적으로 갈구하는 自由를, 그리고 해탈을 얻게 해주는 유일한 길이라는것을.
▲ 용어천 게곡에 있는 치마바위 ⓒ 2010 한국의산천
이 바위는 제가 중학교 2~3학년이던 1972년. 요델과 북인천 산악회 회원이셨던 이건영 선배님으로 부터 암벽 등반을 배우던 곳으로 그 때 우리는 이곳을 치마바위라고 불렀습니다. 그 후에 이곳을 개척(?)했다고 하시는 분들이 자기들이 이름을 지어서 제게 변경해 달라고 하는 요청이 있지만 제게는 영원한 '치마바위'입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배우는 산 느끼는 산
어떤 산행이던 자기가 하는 등산만이 정통하다고 생각하는 단편은 광신이며 그 자체가 아집을 낳아 산에 다니는 사람끼리 편가르기를 하게되고 다툼을 낳은다. 바위를 하던 백두대간을 타던 집뒤의 작은 동산을 오르건 간에 진정한 자연의 소리를 느끼면 되는것이다. 산에 오르는 진정한 그 무엇인가를 느끼지 못한다면 산을 오르는 의미가 없는것이다.
그간 어떻게 살아왔나 정상만을 추구하며 산을 오르고 삶 또한 앞만보고 달려오지는 않았는지. 그래서 나에게 남은것이 무엇이었던가? 그래 정상을 염두에 둘 필요는 없다. 오를만큼 오르는거야. 지쳐 더이상 오르지 못하겠다면 돌아서며 그곳이 자기가 선택한 종착지라고 생각하면 그만이야 , 삶 또한 그렇게 살아야해. 자신의영혼이 잘 따라오나 뒤를 돌아보면서... -한국의산천-
▲ 人生은 후회하면서 살아 간다. 산으로 또 산으로 ⓒ 2010 한국의산천
산은 존재하는 그 자체만으로 무한한 뜻을 지닌다. 언제나 침묵하는 자세로 우리들 곁으로 다가와 혼탁해진 사람의 가슴을 열게하고 순백한 애정의 한자락을 심어준다.
여울처럼 지나간 날들의 후회스런 시간들 끊임없이 삶의 고난과 마주치며 외로운 궤적을 밟고 온 세월, 뛰어넘어도 상관없을 지나간 공백의 시간, 삶에 진공이 생길 때 그 자리를 채우는 것은 나태와 자폐뿐이다.
삶은 조여진 줄처럼 긴장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완벽하게 경직되어 있기만 한다면 그 생 또한 쉽게 부서지기 쉽다. 삶을 시행착오 없이 살기란 힘들다. 착오는 시간의 낭비를 가지고 오지만 어쩔도리가 없다. 미래를 살아보지 않는 한 수레바퀴 돌 듯 쉬지않고 진행되는 일상을 정지 시킬 방법은 부재하다. 후회하면서도 살아보는 수밖에 없다.
그것은 마치 미답의 산을 처음 오르려는, 그래서 정상에는 무엇인가 기대할 만한 것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출발하는 산행과 동질성을 띤다.
삶을 돌아본다는 것은 미지의 산을 향해 한발 한발 걸어나간 족적을 헤아려 보는 회상과 다를바 없다.
우리는 후회하면서 살아간다. 그것이 인생이다. 운명이고...
◀ 지갑을 분실하여 운전면허증을 새로 발급받기 위해 오늘 ( 2010· 10 ·21) 촬영한 반명함판 사진 ⓒ 한국의산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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