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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친호흡 몰아쉬며 ^^ 굽이치는 산맥넘어 손의 자유, 발의 자유, 정신의 자유를 찾는다. 기억은 희미해지기에 이곳에 기록을 남긴다

조선왕조실록2

세검정 차일암 조지서 홍지문 세검정 차일암 탕춘대터 둘러보기 [답사·촬영. 2008. 2. 15일(금요일). ] 칼을 씻어(洗:씻을 세) 칼(劍·칼 검)집에 넣으며 태평성대를 기원하고, '실록' 편찬 후 사초를 씻어 흔적을 지우던 곳. 세검정과 차일암. 현재 서울 세검정이라는 지역은 세검정(洗劍亭) 정자를 중심으로 한 부암동, 홍지동, 신영동 ,평창동 일대를 통틀어 가리키는 지역 대명사로 쓰인다. 이곳의 지형은 북한산 줄기가 뻗어 내린 관계로 평지보다는 계곡이 많다. 그렇기에 인조반정 때까지만 해도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이었으나 그 후 간장 담그는 기술자와 창호지 만드는 기술자를 상주케 하여 '메주가마골' 이라는 별칭도 생겨 났으며, '실록'을 편찬 한 후 실록의 기초가 되었던 사초(史草)를 물에 지우는 세초지가 있었으며, 종.. 2008. 2. 14.
한림 사관 한림(翰林)·사관(史官) 후세에 바른 역사를 전하기 위해 붓한자루에 목숨을 걸었던 사관 나라는 망해도 역사를 없앨수는 없다. 사관이란 역사를 기록하는 하급관리이다. 중종실록에서 나오기를 "사관의 지위는 낮지만 만세의 공론을 쥐고 있으니, 위세를 두려워해서도 안되고 사사롭게 아부를 해서도 안된다. 크게는 임금의 득실과 작게는 대신의 선악을 붓으로 기록하되. 늠름하고 의연해서 압설(狎褻)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그래서 직책은 중하고 처지는 엄비(嚴秘)하니 진실로 삼공의 낭속(廊屬)이 아니다" 하였다. 사관을 추천하는 과정중 추천자의 이력서를 놓고 절하고 이렇게 축문을 읽었다. " 유세차 모년 모월 모일 황천(皇天) 후사(後士)의 신께 감히 아뢰옵나이다. 사필을 잡은 임무는 국가에서 가장 높고 무거운 것이니,.. 2008. 2.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