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슬픔을 당신은 아시나요” 바이올린·연극 사랑했던 김정주
[아무튼, 주말] 별세한 ‘게임 황제’ 김정주
은둔의 경영인,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들
이혜운 기자
입력 2022.03.12 03:00
2019년 12월 14일 고(故) 김정주 NXC 이사가 친구인 김정운 전 명지대 교수가 만든 여수의 작업실 ‘미력창고’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있다. 줄리어드 예비학교를 다닌 음악 영재 출신인 그는 이날 40년 만에 바이올린 활을 잡았다./김정운 전 명지대 교수 제공
2019년 12월 14일 저녁 7시. 전남 여수 교동에서 배로 1시간 가야 하는 외딴섬에서 소금기 가득한 바닷바람을 타고 바이올린 소리가 들린다.
멕시코의 천재 작곡가 마누엘 퐁세의 ‘작은 별(Estrellita)’. “나의 슬픔을 당신은 아시나요/ 나의 아픔을 아시나요/…/당신은 아시나요/ 내가 사라져 간다는 것을.” 이어서 아렌스키의 피아노 트리오 1번이 흘렀다. 바이올린 현의 선율이 첼로, 피아노와 만나 우수에 찬 듯 쓸쓸했다.
바이올린을 든 남자는 넥슨 창업자 김정주 NXC 이사. 그는 이날 친구인 김정운 전 명지대 교수가 미역 창고를 개조해 만든 작업실 ‘미력창고(美力創考)’에서 피아니스트 한지호, 첼리스트 허정인 등과 ‘미역 창고 섬 음악회’를 열었다.
지난달 말 미국에서 별세한 김정주(54)는 ‘은둔의 경영자’로 불렸다. 공식 행사에 모습을 드러낸 적이 많지 않아서다. 다양한 인수합병으로 넥슨 제국을 만들어 ‘게임 황제’로 불리기도 했다. 그러나 가까운 지인들은 김정주를 음악과 연극을 사랑했던 ‘예술인’으로 기억한다. 백팩을 메고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레고와 자전거, 사진을 즐겼던 노마드이기도 했다.
김정주 사후 넥슨의 향방이 국내외 게임 업계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른 가운데 잘 알려지지 않은 그의 숨은 이야기를 들었다.
이화콩쿠르에서 우승한 바이올린 영재
김정주가 여수에서 바이올린을 잡은 건 40년 만이었다. 초등학교 6학년이던 1979년, 제28회 이화경향콩쿠르에서 바이올린 부문 우승을 차지한 영재였다. 정경화⋅조성진을 배출한 그 대회다. 그도 이때부터 음악의 길을 걸었다.
1980년에는 KBS와 협연했고, 이종숙·김남윤을 사사했다. 줄리아드 예비학교에 입학해 도로스 딜레이, 강효의 가르침을 받기도 했다.
음악적 재능은 서울대 음대에서 피아노를 전공한 어머니 이연자씨에게 물려받았다. 외가는 예술가의 피가 흐르는 집안. 그의 둘째 이모는 한국미술사학회장을 지낸 이성미씨, 막내 외삼촌은 서울대 동양사학과 교수를 거쳐 규장각 관장을 지낸 이성규씨다.
여수 음악회를 마친 뒤 김정주는 어머니에게 연주하는 사진을 보여줬다. 어머니는 김정운 교수에게 “아들이 다시 바이올린을 켜게 해줘 고맙다”는 인사를 건넸다. 김정주는 “최고의 효도를 한 것 같다”며 밝게 웃었다.
김정주에게 바이올린은 마지막 안식처였다. 2020년 ‘콰르텟 제이’를 결성해 그해 12월 ‘김정운의 인문학콘서트’에서 첫 무대를 가질 예정이었으나 코로나 확산으로 무산됐다.
지난 9일 대통령 선거날 오후에도 작은 음악회를 열 계획이었으나, 오미크론으로 일정을 재조정하는 중이었다. 김정운 교수는 “이번엔 (김정주의) 부모님까지 초대하려 했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김정주의 예술가적 기질은 음악뿐만이 아니었다. 2006년 그는 홀연히 대학로 연극단 ‘독’에 합류한다. 이미 회사는 전문 경영인 체제로 운영되고 있었다.
회사에서는 젊은 회장이지만, 극단에서는 늙은 막내. 그는 헐렁한 티셔츠에 바지, 샌들을 신고 땀을 뻘뻘 흘리며 무대 장치를 못질하고, 음향을 점검하고, 포스터를 붙이고 다녔다. 연극 ‘돌고 돌아’ 때는 직접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실전 경험만 쌓은 건 아니다. 2007년 김정주는 마흔의 나이로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입학한다. 그는 어린 학생들과 연극도 하고 뮤지컬도 보고 사진도 찍으며 5년을 보냈다.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뉴욕 코미디 스쿨로 유학을 떠난 것이다.
경비도 못 알아본 회장님
이렇게 세계를 누비고 다녔지만, 아무도 그가 13조원대 부자인 것을 몰랐다. 넥슨이 선릉역에 있던 시절, 넥슨은 주변 건물 네 개를 임차해 쓰고 있었다. 김정주는 이 중 어디에도 자신의 사무실을 두지 않았다. 그가 있던 곳은 늘 선릉역 커피빈. 직원들과 의논할 일 있으면 늘 커피빈으로 불렀다. 그러다 어느 비 오는 날, 회사에 일이 있어 급히 건물로 뛰어 들어갔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이 뛰어 들어오니 경비가 막아섰다. 배낭에 청바지를 입은 그가 회장일 거란 생각을 못 한 것이다. 김정주도 자신이 대표라는 걸 증명할 방법이 없었다.
평생 수행 비서도 없었다. 해외 출장길, 그는 늘 스스로 비행기 티켓을 사고 대중교통으로 움직였다. 사진을 즐겨 찍을 때는 렌즈 하나 바꾸는 것도 비싸다고 덜덜 떨었다. 그러나 쓸 땐 썼다. ‘푸르메재단 넥슨 어린이재활병원’은 그가 사재 500억원을 기부해 지었다. 백경학 푸르메재단 상임이사는 “모두 그를 국내 IT 산업을 이끈 선두 주자라고 하지만, 나는 그가 소외된 장애 어린이와 부모들의 눈물을 닦아준 기업가로 기억되길 바란다”고 했다.
뉴욕 코미디스쿨에서 유학 중인 김 이사의 모습. /김정운 전 명지대 교수 제공
레고와 자전거를 즐긴 노마드 사업가
김정주는 타고난 사업가였다. 전 세계를 돌아다닌 것도 사업 아이템을 찾기 위해서였다. 취미도 많았다. 레고를 좋아했고, 자전거도 곧잘 탔다. 이재웅 다음 창업자 등이 이끄는 ‘86학번 모임’에 자전거를 타고 나타났다가 대리를 불러 돌아가기도 했다.
레고를 좋아해 2013년 개인이 레고를 사고파는 온라인 장터 ‘브릭링크’를 인수했다. 같은 해 12월에는 ‘강남 유모차’로 불리는 노르웨이 유아용품 스토케를 인수하기도 했다.
사업가 자질은 아버지 김교창 변호사에게 물려받았다. 음악가 대신 사업가로서 삶을 선택한 것도 아버지 영향이었다. “무대 위에서 박수 받는 삶보다, 무대 아래에서 박수를 치는 삶이 더 좋지 않을까.” 그때부터 김정주는 마음 잡고 공부해 서울대 컴퓨터공학과에 입학한다.
대학에서도 별난 공대생이었다. 음대에서 오케스트라 수업을 듣고, 교양 필수인 사회학 개론 대신 교양 선택인 범죄심리학을 들었다. 그래서 학점 미달로 대학을 1년 더 다녀야 했다. 그때 창업에 대한 꿈을 키웠다고 한다.
대학 졸업 후 그는 한국 인터넷 아버지로 불리는 카이스트 전길남 교수의 연구실로 들어갔다. 그러나 연구에는 관심이 없던 그를 전 교수는 가만두지 않았다. 연구실에서 쫓겨난 그를 보듬어준 건 현 카이스트 총장인 이광형 전산학과 교수다. 이 총장은 “김정주는 공부는 착실하게 안 하면서 머리는 노랗게, 빨갛게 하고 귀걸이도 짝짝이로 하는 골치 아픈 제자였다”고 회상했다.
김정주가 넥슨을 창업한 건 1994년 12월. 이미 몇 번의 창업을 실패한 후였다. 그는 이번에는 아버지에게 손을 벌려 사무실을 얻었다. 과거 사무실 월세 비용이 감당이 안 돼 실패한 것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는 이미 새신랑, 더 이상의 실패는 하면 안 됐다. 사실 그는 창업할 필요가 없었다. 삼성 장학생이었던 그는 졸업과 동시에 삼성에 취직하기로 돼 있었다. 그러나 그는 삼성의 7시까지 출근해 4시에 퇴근하는 제도를 끔찍하게 싫어했다. 다행히 그의 가족 아무도 그에게 그런 삶을 강요하지 않았다.
넥슨의 미래는?
넥슨의 지배 구조는 NXC·NXMH→넥슨→넥슨코리아 등으로 이어진다. 김정주는 NXC 지분의 67.49%를 보유하고 있었고 아내인 유정현 감사가 29.43%, 두 딸이 각각 0.68% 등 전체의 98.28%를 보유하고 있다.
아직 유족은 어떤 입장도 밝히지 않았지만, 김정주의 지분은 아내와 두 자녀에게 상속될 가능성이 크다. 다만 경영 개입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이미 김정주와 유 감사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고, 김정주는 앞서 두 딸에게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매각설도 나오지만, 2019년 그와 가족이 보유한 NXC 지분 전량을 공개 매각했을 때 적당한 매수자가 없어 성사되지 않은 바 있다.
경제지 포브스는 지난해 5월 기준 김정주의 자산 규모를 109억달러로 평가했다. 현재 환율로는 13조원이 넘는다. 상속세 및 증여세법에 따르면 최고 상속세율은 50%다. 최대 주주의 주식 등에 대해서는 20%를 더 가산하도록 돼 있다. 김 이사의 자산가치 13조원을 적용할 경우 8조원 가까운 상속세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이 상속세를 가족들이 NXC 지분으로 물납하는 방법을 택할 가능성이 클 것으로 보고 있다. NXC는 비상장사이고, 비상장사 지분을 물려받을 땐 상속세를 주식으로 대신 낼 수 있다. 이렇게 NXC 지분 40.49%를 상속세로 납부해도 여전히 유가족이 보유하게 되는 지분은 절반이 넘어 넥슨 오너십이 쉽사리 흔들리지는 않을 것으로 분석된다.
최근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인 ‘퍼블릭인베스트먼트펀드’(PIF)가 넥슨 주식을 추가로 매입하며 지분율을 7.09%로 끌어올렸지만 이 역시 큰 영향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PIF는 이번 매수를 단순 투자로, 경영 참여가 아닌 주식 보유에 따른 기본 권리만 행사하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기 때문이다.
이혜운 기자
음악과 음식, 넷플릭스 등 OTT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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