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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친호흡 몰아쉬며 ^^ 굽이치는 산맥넘어 손의 자유, 발의 자유, 정신의 자유를 찾는다. 기억은 희미해지기에 이곳에 기록을 남긴다

한중록2

한중록 한듕록 혜경궁 홍씨 한중록·한듕록(지은이 혜경궁 홍씨) [2008 . 2. 27 (수) 한국의산천] '한중록'은 혜경궁 홍씨의 정치적인 자전적 회고록(자서전)이다.한중록은 '한중만록(閑中漫錄)'이라고도 불리며 '피 눈물의 기록'이라는 뜻의 '읍혈록(泣血錄)'이라고도 불린다. 한중록은 네 차례에 걸쳐 쓴 6권 6책의 회고록으로 원본은 소실되고 없다. 다섯종의 필사본이 남아있다. 우리가 중학교 시절 배운 한중록은 그 내용에 있어서 국어시간에 따른 문학 즉 궁중에서 쓰여진 순수 한글 소설이라는 점에서 대표궁중문학이라고 교육 받아 왔다. 그런점에서 역사적인 흐름을 잘 모르던 중학교 시절에는 혜경궁 홍씨와 한중록에 깔린 깊은 내막은 정확이 알기는 어려웠던 것은 사실이다.    ▲ 한중록 ⓒ 2008 한국의산천 한.. 2008. 2. 26.
사도세자의 고백 다시 돌아보는 사도세자 [2008.1.29.(수요일) 한국의산천] 무릇 임금이 배라면, 신민은 물과 같다(夫君者舟也 人者水也) '물은 배를 띄울 수도 있지만 뒤집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백성을 생각하는 그의 철학이 이와 같은데 어떻게 세자가 과연 미치광이였나? 붕파에 휩쓸리지 않으며 독자적인 노선을 추구하다가 스러져간 사도세자.(영조 →사도세자 → 정조) 영조의 아들,(사도)세자는 1735년(영조 11)에 태어나서 1762년(영조 39), 28세를 일기로 뒤주에 갇혀 죽었다.'뒤주 속의 죽음' 이 사건은 조선왕조 사상 왕위계승권자와 국왕 사이에서 붕당정치로 일어난 최악의 사태이다. 세월은 가도 아픔은 남아...영조는 사도세자가 죽은 후 훗날 문득 이렇게 말하곤 했다. "어릴 때 (사도)세자는 실로 성인.. 2008. 1.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