阿Q의 시 읽기 릴케의 ‘어머니가 말했다’
阿Q의 시 읽기 〈35〉 릴케의 ‘어머니가 말했다’
어머니는 깊은 골짜기 집의 불꽃
글 :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 릴케는 어머니의 감성을 물려받아… ‘어머니가 말했다’는 24세 때 쓴 시
⊙ 쭉정이 밤 한 톨 주워온 나를, ‘이것 봐라, 내 딸이 알밤 주워왔다!’고 외치던 어머니(시인 문정희)
릴케는 ‘어머니가 말했다’를 1898년에 썼다. 사진은 늙은 어머니 모습이다.
어머니가 말했다
릴케(옮긴이 송영택)
어머니가 말했다.
“얘야, 날 불렀니?”
그 말은 바람 속에 묻혔다.
“너에게 갈 때까지 아직도
험한 계단을 얼마나 더 올라야 하니?”
어머니의 목소리는 별들을 찾아냈지만
딸은 찾지 못했다.
골짜기 깊숙한 곳에 있는 선술집의
마지막 남은 불꽃이 꺼졌다.
Die Mutter
Die Mutter
“Liebling, hast Du gerufen?”
Es war ein Wort im Wind.
“Wie viele steile Stufen
Sind noch bis zu Dir mein Kind?”
Da fand ihre Stimme die Sterne,
Fand aber die Tochter nicht.
Im Thale in tiefer Taverne
Lschte ein letztes Licht.
여덟 살 때 부모가 이혼한 릴케는 어머니 품에서 자라 어머니의 감수성을 물려받았다.
릴케(Rilke, Rainer Maria·1875~1926)는 ‘어머니가 말했다’를 1898년에 썼다. 24세 무렵이고 시집 《인생과 소곡》으로 데뷔한 지 4년쯤 지났을 때다.
9행의 짧은 시지만 함축된 의미는 깊고 넓다. 어머니는 언제나 자식 걱정뿐이다. 자식이 어머니를 찾지 않아도 늘 속삭인다. “날 불렀니?” 하고. 어머니는 자식을 위해서라면 어떤 시련도 마다하지 않는다. 불 구덩이, 지옥불에라도 기꺼이 뛰어든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너에게 갈 때까지 아직도 험한 계단을 얼마나 더 올라야 하니?”
이 말은 어머니의 푸념이 아니다. 푸념일 수 없다. 험한 계단을 더 오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어머니의 이런 간절함을 천상의 별은 알 수 있지만 지상의 자식은 느낄 수 없다.
오죽하면 옛 속담에 ‘신(神)은 모든 곳에 있을 수 없기에 어머니를 만들었다’는 말이 있을까.
2연의 ‘골짜기 깊숙한 곳에 있는 선술집의/ 마지막 남은 불꽃이 꺼졌다’는 동화의 한 장면이 연상된다. 독일어 ‘Taverne’는 선술집 혹은 식당으로 번역되는데 여성형 명사다. 바로 ‘어머니’를 상징한다.
길 잃은 나그네에게 깊은 골짜기 선술집 창에 비친 등불보다 더 반가운 것이 있을까. 그 등불은 항해를 떠난 뱃사람에게 비친 등대와 다름이 없다.
그런데 마지막 행(‘마지막 남은 불꽃이 꺼졌다’)은 어떤 의미일까. 불꽃이 꺼졌다는 것은 나그네가 무사히 선술집을 찾아 여객을 풀었다는 의미일까, 아니면 등불과 같은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는 의미일까.
릴케의 어머니 피아 릴케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관련 자료를 찾아보니 어머니는 아버지 오제프 릴케 사이에서 첫딸을 얻었다. 그러나 딸은 태어난 직후 죽고 말았다. 딸을 잊지 못한 어머니는 릴케를 여자아이처럼 키웠다. 릴케는 일곱 살 때까지 여자 옷을 입고 자라야 했다. 여덟 살 때 부모가 이혼하자 릴케는 어머니 품에서 자라났다. 그의 시에 어머니가 어떤 식으로든 녹아 있음이 틀림없다.
“내 새끼 알밤 주워왔다!”
문정희 시인.
시인 문정희(文貞姬·73)가 가장 깊은 곳에서 건져 올린 단어는 ‘어머니’다. 어머니에게 시인은 “언제나 세상에서 제일 예쁘고, 제일 공부 잘하고, 제일 똑똑한” 존재다. 문정희라는 이름은 어머니가 지었는데, 당시 비행사고로 죽은 한국 최초의 여성 비행사인 이정희(李貞喜·1910~?·일제강점기 여성 비행사)의 이름을 빌렸다. ‘만인이 우러러보고 사랑하는 사람이 되소서’라는 뜻이란다. 그만큼 딸을 사랑했다. 시 ‘그리운 도깨비’와 ‘밤[栗] 이야기’는 어머니에 대한 딸의 사랑이 가득 담겨 있다.
대나무 숲 속에 슬쩍 앉혀 지은
우리집 황토 측간에는
밤이 아니어도
뿔 돋은 도깨비가 살고 있어
어린 날, 측간에 갈 때는
두 손으로 등불 들고 어머니가 따라갔지
엄마는 망을 보고
나는 치마를 올리고 측간에 앉아 있으면
대나무 숲에 사는 새들 속살거리고
총총한 별들 키들거렸지
작은 옹기만 한 내 뒤를
엄마가 쑥 잎으로 닦아줄 때면
쑥 향기 사방에 퍼져
으스스한 도깨비들 꼼짝 못하던
시골 공주의 행차
대나무 숲 속 작은 황토 궁전에
하루에도 두어 번
이런 소름 돋게 아름다운 행차가 있었지.
-문정희 ‘그리운 도깨비’
늙은 어머니 이미지.
유년 시절 어머니와 측간에 갔던 기억을 담은 시 속의 딸은 공주가 되고 어머니는 기꺼이 시녀가 된다. 어머니 앞에선 으스스한 도깨비조차 감히 다가서지 못한다. 아무리 연약하고 야윈 어머니도 딸 앞에선 호위무사가 된다.
시 ‘밤 이야기’ 역시 어머니 사랑이 가득하다. 운동회 날, 실에 매단 밤 따 먹기에 나가 키 큰 아이들이 알밤을 모두 따가고 딸은 겨우 쭉정이 밤 한 톨을 주워왔다. 그러나 어머니는 이렇게 외쳤다. “이것 봐라, 내 딸이 알밤 주워왔다!”
훗날 시인은 그때 일을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빈 운동장 저쪽에서 우리 어머니가 춤을 추며 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어머니는 ‘내 새끼 알밤 주워왔다!’고 소리를 쳤다. 나는 민망하여 얼른 고개를 모로 돌렸다.”
다음은 ‘밤 이야기’ 전문이다.
어릴 적 운동회 날, 실에 매단 밤 따 먹기에 나가
알밤은 키 큰 아이들이 모두 따가고
쭉정이 밤 한 톨 겨우 주워 온 나를
이것 봐라, 알밤 주워 왔다!고 외치던 어머니는
분명 한쪽 눈이 깊숙이 먼 분이셨다
어머니의 노래는 그 이후에도
30년도 더 넘게 계속되었다
마지막 숨 거두시는 그 순간까지도
예나 지금이나 쭉정이 밤 한 톨
남의 발밑에서 겨우 주워 오는
내 손목 치켜세우며
이것 봐라, 내 새끼 알밤 주워 왔다!고
사방에 대고 자랑하셨다
-문정희 ‘밤 이야기’
아무리 자식이 늙어도 어머니 품속이 그립다
장옥관 시인.
장옥관 시인의 ‘영영이라는 말’은 세상을 떠난 어머니를 추억하는 시다.
시인은 마흔 번째 어머니 제사를 모시며 문득 ‘나 죽기 전에 다시는 엄마를 만날 수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속수무책으로 그렇게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 자식은 기일이 되어서야 형식적으로 어머니를 떠올렸다.
그러다 문득 시인은 깨닫는다.
시인이 죽음이라는 의미조차 모르는 어린 나이에 어머니가 영영 세상을 떠났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어머니와 나 사이에 죽음이라는 강이 얼마나 넓은지, 생전에 영영 건널 수 없다는 사실을 그땐 몰랐다.
시인은 ‘그것이 죽음이라는 걸, 그 어린 나이가 어찌 알았으랴’고 탄식한다.
그러나 한번 떠난 어머니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영영, 다시는….
어머니 마흔 번째 제사 모신 날
자리에 눕다가 문득 떠오른 생각,
나 죽기 전에 다시는 엄마를 만날 수 없구나 여태껏 한 번도 공들여 생각해보지 못한 생각, 내 생애엔 정말로 엄마를 다시 볼 수 없구나
그것이 죽음이라는 걸, 그 어린 나이가 어찌 알았으랴
그렇다 하더라도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나 땅에 묻히기 전에 어머니 얼굴 영영 다시 볼 수 없다니
새삼 사무친다, 영영이 얼마나 무서운 말인지
얼마나 무서웠는지
로션조차 안 바른 맨 얼굴의 이런 시를 나는 쓴다
-장옥관 ‘영영이라는 말’
김현주 시인의 ‘호호(好好)해줄게’는 어른을 위한 동시다. 넘어진 아이에게 엄마의 “호~”만 한 치료약은 없다. 상처를 치유하고 마음까지 보듬는다. 어린 시절 엄마의 “호~”는 마법과 같았다.
각박한 세상을 살다 보면 나이가 들어도 엄마의 “호~”가 그립다. 살기가 고통스러울 때 엄마에게 안기고 싶다. 그래서 엄마의 무덤을 찾는다. 둥근 봉분에 엎딘 자식, 울음을 그치지 않는다. 화자는 엄마의 “호~” 하는 마음으로 이렇게 시를 끝맺는다.
‘늙은 당신도, 지금 엄마의 호호(好好)가 필요한 것이다’
아이가 넘어져 울음을 터트린다
엄마가 호, 해줄게
그럼 안 아플 거야
마법 같은 엄마의 호호,
아이가 울음을 뚝 그쳤다
엄마의 好, 好는 울컥한 슬픔을 지녔다
그 품은 너무나 커서 세상의 모든 이론을 무시한다
둥근 봉분에 엎드린 한 사람
울음을 그치지 않는다
늙은 당신도, 지금 엄마의 好好가 필요한 것이다
-김현주 ‘好好해줄게’
어머니·나·손녀, 三代 이야기
신평 시인.
변호사 신평(申平·63)이 두 번째 시집을 냈다. 《들판에 누워》는 서정시로 가득하다. 법조 개혁에 앞장선 인권 변호사의 완강함 대신 따스한 감성이 행간에 가득하다. 시 ‘3대(三代)’에는 시인의 어머니와 딸의 이야기가 함축적으로 담겨 있다.
세상이 내 맘 같지 않고, 자식도 내 맘 같지 않다. 그래도 예순 넘은 응석까지 온전히 받아주는 이는 세상에 단 하나 어머니뿐이다.
오늘도 세상일이 고된 시인은 어머니가 누워 계신 군위군 의흥면 어느 야산 마루를 찾아간다. 어머니는 그런 아들을 품에 안으며 나직이 말을 건넨다. “힘 부치거등 솔바람 타고 이곳에 건너오너라.”
시인 신평의 두 번째 시집 《들판에 누워》.
어머닌 이팔의 나이에 시집와
만으로 서른여섯에 열 남매 끄트머리 나를 낳았다
나는 그 서른여섯에 비로소 첫아이를 얻었다
어머니, 나 그리고 딸은 그러니까 모두 양 머리를 덮어썼다
열두어 살 될 때까지 제일 좋은 놀이터는 엄마 치마폭이었다
어머니 눈 속에 박힌 달덩어리라
한 번씩 나를 끌어안고 자지러지게 내 새끼야! 하고 흔들어댔다
아비 꼭 닮은 딸을 아끼고 애태웠지만
딸은 언제나 우두커니 구석에서 말이 없었다
그러다 벌컥 감정을 폭발시키던 날, 지구는 둘둘거리며 자전하고 있었다
어머니 누워 계신 군위군 의흥면 어느 야산 마루에서
오늘도 어머니는 나직이 나를 부른다
세상 살아봐야 별거 없데이
아-들 일로 쓰리고 거친 골짜기 넘고 넘어도
가-들 잘 키워가능 게 제일이지
그러다 힘 부치거등
솔바람 타고 이곳에 건너오너라
-신평 ‘삼대’ 전문⊙ [출처 월간 조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