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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사람에 충성 않는다” 강골검사…정치입문 254일 만에 ‘대권’

by 한국의산천 2022. 3. 10.

기억은 희미해지기에 기록남기기

동아일보 / 정치
“사람에 충성 않는다” 강골검사…정치입문 254일 만에 ‘대권’
장관석 기자
입력 2022-03-10 03:32업데이트 2022-03-10 0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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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4학년이던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오른쪽)이 설날 아침 아버지 윤기중 연세대 명예교수. 여동생(윤신원 : 現 의학박사 중앙대학교 교수) 과 함께 찍은 사진.


“정의와 상식이 무너지는 것을 더는 두고 볼 수 없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검찰총장이던 지난해 3월 “헌법정신과 법치 시스템이 파괴되고 있다”라는 사퇴의 변을 남기고 26년 검사 생활을 마감했다. 

“검찰에서 제 역할은 여기까지”라고 했던 윤 당선인은 석 달 뒤 “부패하고 무도한 세력으로부터 정권교체를 이뤄내겠다”며 정계 진출을 선언했다. 

 

제1야당 대선 후보 자리에 이어 본선 레이스 막판에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와의 야권 단일화까지 성사시켰던 윤 당선인은 결국 대권까지 거머쥐었다.

대선 승리로 윤 당선인은 현대 정치사에 여러 가지 기록을 남기게 됐다. 

1987년 개헌 이후 선출직에 처음으로 도전한 정치인이 대선에서 승리한 것도, 검찰 출신이 대통령이 된 것도, 서울대 법대 출신이 청와대의 주인이 된 것도 모두 처음이다. 또 대한민국의 13번째 대통령이 될 윤 당선인은 첫 서울 출신 대통령이다.


● “너는 공…눈사람 구르듯 커질 것”

 

서울대 법학과에 재학 중이던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눈 내린 어느 날 친구인 신용락 변호사의 등에 업혀 웃고 있다. 두 사람은 충암고. 서울대 법학과 79학번 동기다.


윤 당선인은 1960년 12월 18일 서울 성북구 보문동에서 윤기중 연세대 명예교수와 최성자 씨의 1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소득 불평등을 연구해 온 저명한 경제학자인 윤 교수는 그의 가치관 정립에 많은 자양분을 제공한 인물이다. 윤 교수가 아들의 서울대 법대 입학을 기념해 선물한 미국 신자유주의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의 저서 ‘선택할 자유’는 윤 당선인이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이다.

대광초등학교와 충암고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윤 당선인은 유년시절 여유와 뚝심, 의리와 원칙을 중시하는 가치관을 정립하게 됐다. 이런 윤 당선인을 눈여겨본 고교 친구 신용락 변호사는 1977년 11월 윤 당선인에게 “너는 둥근 공이라 이리저리 내키는 대로 갈 수 있다. 너는 눈사람 구르듯이 커질 것이다”라는 편지를 썼다.

1979년 서울대 법대에 입학했지만 사법시험 도전은 순탄치 않았다. 

윤 당선인은 1982년부터 사법시험에 도전했지만 연거푸 고배를 들었고 9수 끝에 1991년 합격했다. 윤 당선인은 훗날 “시험을 앞두고 친구 결혼식에 참석하려고 대구 가는 고속버스를 탔는데, 그 버스에서 펼쳐본 형사소송법에 ‘비상상고’ 내용이 있었다”며 “실제 시험에서 비상상고 문제가 나왔다”고 회상한 바 있다. 

비상상고는 형사 확정 판결에서 법령 위반이 발견됐을 때 검찰총장이 대법원에 신청하는 비상구제 절차다. 윤 당선인은 “비상상고는 판사 검사 변호사는 몰라도 되는, 검찰총장만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이라며 “내가 총장이 되고 나서 비상상고를 역대 (총장 중) 가장 많이 했다”고 말했다.

이후 1994년 대구지검에서 검사 생활을 시작한 윤 당선인은 2002년 검찰을 떠나 약 1년간 변호사 생활을 하기도 했다. 

변호사 생활을 접은 이유에 대해 윤 당선인은 “검찰청사를 들렀다가 야근 검사실에서 나는 짜장면 냄새가 그리워 다시 검찰로 돌아왔다”고 회상했다. 

이런 그를 두고 일각에선 “검찰주의자”라는 평가가 나오지만 그는 측근들에게 “나는 기본적으로 ‘헌법주의자’다”라는 입장을 내비쳤다.

검사 생활 동안 윤 당선인은 권력층, 기업 비리 수사를 맡아 이름을 알렸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대선 자금 수사를 맡아 노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었던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와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을 구속 기소했다. 2006년 현대자동차 비자금 수사에서는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을 구속 기소했다.

결혼을 하지 않아 후배들로부터 ‘검찰 총각 대장’이라는 의미로 “총장”이라고 불렸던 윤 당선인은 2012년 3월 11일 52세의 나이로 김건희 코바나컨텐츠 대표와 결혼했다. 결혼식장 역시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검찰청 예식장이었다.

 

●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1985년 선배의 약혼식 후 모인 자리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


윤 당선인의 검찰 생활은 2013년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 수사를 기점으로 급격한 변화를 맞게 된다. 

당시 수사팀장이던 윤 당선인은 2013년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조영곤 서울중앙지검장이 ‘야당 도와줄 일 있나, 야당이 이걸 갖고 정치적으로 얼마나 이용을 하겠냐’라고 말했다”라며 수사와 관련된 외압을 폭로했다.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그의 발언은 이후 윤 당선인을 설명하는 가장 상징적인 단어가 됐다.

댓글 수사를 밀어붙이고, 외압을 폭로했던 윤 당선인은 2014년 대구고검 검사로 밀려난다. 사실상 좌천된 윤 당선인의 모습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봤던 부인 김 씨는 유산까지 했다. 

 

검찰 인사가 있을 때마다 사의설이 돌았지만 그는 지인들에게 “잘못한 게 있어야 거취를 밝히지, 잘못한 사람들이 시퍼렇게 눈뜨고 있는데”라며 스스로 검찰을 떠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당시 주중에는 대구, 주말에는 서울에서 머물렀던 윤 당선인은 지인이 대구 관사로 찾아오면 계란말이, 김치찌개 등을 직접 요리해 대접했다. 윤 당선인은 그때 갈고닦았던 요리 실력을 대선 출마 뒤 방송 프로그램에서 선보이기도 했다. 2015년 10월 윤 당선인이 당시 야당 대표였던 문재인 대통령을 처음으로 만난 곳도 동대구역 플랫폼이었다.


● ‘살아있는 권력’ 겨누다 정치의 길로


이후 윤 당선인은 2016년 12월 국정농단 특검 수사팀장으로 부활했다. 당시 윤 당선인은 박영수 특검의 지휘를 받아 한동훈 사법연수원 부원장과 호흡을 맞춰 국정농단 사건 수사를 이끌었다.

탄핵 정국을 거쳐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윤 당선인은 또 한 번의 큰 변화를 겪게 된다. 적폐청산을 앞세웠던 문 대통령은 2017년 5월 취임 직후 대전고검 검사였던 윤 당선인을 서울중앙지검장에 임명한다. 이후 서울중앙지검 3차장을 맡았던 한 부원장과 함께 그는 이명박 전 대통령,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을 구속 기소하는 수사를 이끌었다. 약 2년 뒤인 2019년 7월 문 대통령은 윤 당선인을 “우리 윤 총장”이라고 부르며 문재인 정부의 두 번째 검찰총장으로 임명한다.

문재인 정부에서 승승장구했던 윤 당선인은 정작 검찰 수장이 된 뒤 곧바로 격랑에 휘말린다. 문 대통령의 ‘페르소나’로 불렸던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딸의 입시비리 의혹, 부인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의 사모펀드 의혹 등을 둘러싼 검찰의 대대적인 수사가 시작됐기 때문이다. 

여기에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월성 원자력발전소 경제성 조작 의혹 수사까지 밀어붙였다. 모두가 여권의 핵심 인사 및 정책과 연관된 수사들이었다.

2020년 1월 취임한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이런 윤 당선인을 통제하려는 뜻을 감추지 않았다. 윤 당선인의 측근들은 뿔뿔이 지방으로 흩어졌고, 그해 11월 사상 초유의 검찰총장 직무집행 정지 명령까지 내려졌다. 그러나 추 전 장관을 앞세운 여권의 압력이 강해지면서 역설적으로 윤 당선인의 정치적 무게감도 커졌다. 

윤 당선인이 문재인 정권과 맞서는 상징적인 인물로 부각된 것.

결국 헌법정신을 강조하며 검찰총장직을 던진 그는 정권교체를 바라는 여론을 등에 업고 본격적인 대선 준비에 나선다. 이번 대선 레이스에서 윤 당선인 측이 “국민이 불러낸 윤석열”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운 이유다. 정계 진출 뒤 윤 당선인은 자신이 구속시켰던 두 전직 대통령을 배출한 국민의힘에 입당한다. 적폐청산 수사를 탓하는 당원들에게 그는 “나를 정권교체의 도구로 이용하라”고 설득했고, 경선에서 승리해 제1야당의 대선 후보가 됐다.

이어 윤 당선인은 공식 선거운동 기간 동안 “정직한 머슴”을 앞세워 유권자들에게 호소했다. 유세 과정에서 ‘어퍼컷 세리머니’를 했던 당선인은 결국 이날 최종적으로 승리의 어퍼컷을 선보였다. 

지난해 6월 29일 정치 입문을 선언한 지 254일 만이다.

장관석 기자

윤석열 프로필 

출생일 : 1960년 12월 18일 생 2022년 올해 63세
신체 사항 : 윤석열 키 178센치, 몸무게 90키로, 혈액형 B형 
본관 : 파평 윤씨
고향 출생지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연희동 인근.

현주소 : 서울 서초구 서초동 아크로비스타 
가족 관계 : 부. 모. 배우자 김건희. 여동생 윤신원

▲ 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어머니 아버지 여동생 윤석열

 

아버지 윤기중 교수 고향 충청남도 논산 연세대학교 상경대학 응용통계학과 명예교수.

어머니 전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여동생 윤신원 :

의학박사 현재 중앙대학교병원 교수 중앙대학교 교수

 

주말에도 병원에 나와 회진하며 환자를 돌보는
중앙대 병원 소아청소년과 윤신원 교수

 

 

윤석열 학력 :

대광국민학교 졸업.

충암중학교 졸업

충암고등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학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법학석사

 

제 43대 검찰총장 

 

정치  대선
“12살 차이라 포기하려다가...” 윤석열·김건희의 러브스토리
김소정 기자
입력 2022.03.11 13:50
윤석열(62) 대통령 당선인과 아내 김건희(50)씨의 다정한 ‘투샷’이 공개됐다.

채널A '정치 신인의 어퍼컷 윤석열 대통령 되다'

 

10일 방송된 채널A ‘정치 신인의 어퍼컷 윤석열 대통령 되다’에서는 윤 당선인과 김씨의 과거 사진이 공개됐다.

사진에서 김씨는 윤 당선인의 목에 팔을 두르고 있었고, 윤 후보는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 사진이 온라인 커뮤니티와 소셜미디어 등에 퍼지며, 두 사람의 러브스토리에 대해서도 관심이 쏠렸다.

윤 당선인과 김씨는 스님의 소개로 처음 만났다. 첫 만남에서 윤 당선인은 김씨가 마음에 들었지만, 12살의 나이 차이 때문에 포기했다고 한다. 

 

김씨가 준 명함도 일부러 버렸다고.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윤 당선인이 김씨의 이메일로 마음을 표현했고, 이를 알게된 지인들이 윤 당선인과 김씨가 다시 만날 수 있게 도와줬다. 윤 당선인은 김씨가 준 명함을 버리기 전에 이메일 주소를 통째로 외웠다가 망설인 끝에 연락했다고 한다.

두 사람은 2년 교제 뒤, 2012년 3월 대검찰청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당시 대검찰청 중앙수사1과장이던 윤 당선인은 52세, 김씨는 40세였다.

이날 방송에서 윤 당선인의 대학동기 이미현씨는 결혼식에 꼭 참석해야 했던 이유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씨는 “윤 후보 결혼식 때 하객이 엄청나게 많이 왔다. 많이 온 이유가 뭔지 아냐. 사람들이 다 ‘윤석열이 정말 장가를 간다고? 이건 눈으로 확인을 해야 돼’ 그래서(많이 왔다)”라고 말했다.

이어 “사실 바쁜 일 있고 그러면 축의금을 대신 보내고 그러지 않냐. 그런데 저희 대학동기들도 다 왔다. 우리 아들이 중학교에 다니고 있어서 못 가는 게 아닌가 싶었는데 (윤 당선인의 결혼식을)눈으로 확인해야 해서 갔다”고 말했다.

김씨는 2018년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윤 당선인과 결혼을 결심하게 된 계기에 대해 “나이 차도 있고, 오래전부터 그냥 아는 아저씨로 지내다 한 스님이 나서서 연을 맺어줬다”며 “남편이 가진 돈이 2000만원밖에 없어서 망설였는데 내가 아니면 이 사람이 결혼하지 못할 것 같았다”고 말했다.

지난 1월 논란이 된 ‘김건희 7시간 녹취록’에도 그 ‘스님’이 등장한다. 

김씨는 “그분(스님)이 처음 소개할 때도 너희들은 완전 반대다. 김건희가 완전 남자고 석열이는 완전 여자다. 근데 누가 그걸 그렇게 보겠어. 근데 정말 결혼을 해보니까 그게 진짜인 거야. 내가 남자고, 우리 남편이 여자인 거야, 진짜. (중략) 드라마 보면서 쭉쭉 우는 게 우리 남편이에요. 영화 보면 제일 눈물 많고. 그랬는데 진짜 성격이 정말 반대더라고. 아 그래도 진짜 도사는 도사구나. 결혼해서. 도사는 도사구나. 그랬어”라고 말했다.

김씨는 11일 언론에 보낸 메시지를 통해 윤 당선인에 대해 “늘 바빠도 제게는 언제나 다정한 사람이었다”고 했다. 

이어 “남편에게 가장 감동한 말은 ‘평생 집밥 해줄게’였다”며 “결혼할 때 평생 밥해주겠다고 약속했는데,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잘 지키고 있다. 국민과 한 약속은 더 잘 지킬 것으로 믿고 있다”고 말했다.

김소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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