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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문학음악

阿Q의 시 읽기 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by 한국의산천 2022. 1. 30.

阿Q의 시 읽기 〈54〉 정호승·조경선·해인스님·박별의 新作시집
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글 :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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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호승 시인, 등단 50주년 기념 시선집 《내가 사랑하는 사람》 펴내
⊙ ‘누가 놓고 간 시인가 눈썹달 하나. 어둠을 걷어낸 해님도 시를 놓고 갑니다’(박별)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는 햇살을 바라보면 세상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전남 담양의 관방제림을 찾은 시민들이 나무 그늘 아래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사진=조선일보DB


  지난 7월 한국을 대표하는 서정시인 정호승의 시선집 《내가 사랑하는 사람》(김영사 刊)이 나왔다. 등단 50주년을 한 해 앞두고 2014년 펴낸 동명(同名)의 시선집을 대폭 손질했다.
 
  데뷔작 ‘첨성대’를 비롯해 ‘수선화에게’ ‘산산조각’ ‘선암사’ ‘내가 사랑하는 사람’ 등 시인의 대표작 275편이 망라되어 있다. 시선집을 펴내며 시인은 이런 말을 했다.
 
  “나무 밑에 있다가 새똥이 내 눈에 들어가 그만 장님이 된 심정이다.”
 
  이 ‘심정’을 정확히 이해할 수 없지만 떠나간 새처럼 세상에 내어놓는 시에 대한 사랑과 연민, 막막함을 느낄 수 있다. 지금까지 시인은 몇 권의 시선집을 냈지만 이 책에 많은 애정을 담았다. 시인의 말이다.
 

“시는 쓴 사람의 것이 아니고 읽는 사람의 것이다. 시는 어느 한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고 만인을 위한 것이다.”
 
  이 말에 그의 시론(詩論)이 담겨 있다. 또 이런 말도 했다.
 
  “사람은 누구나 시인이다. 사람의 가슴 속에는 누구나 시가 가득 들어 있다. 그 시를 내가 대신해서 쓸 뿐이다.”
 
  정 시인은 197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동시, 1973년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시, 198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이 당선돼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반시(反詩)’ 동인으로 활동했다.
 

정호승 시인의 시선집 《내가 사랑하는 사람》(김영사).
  시집 《슬픔이 기쁨에게》 《서울의 예수》 《별들은 따뜻하다》 《새벽편지》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라》 《이 짧은 시간 동안》 《포옹》 《밥값》 《여행》 《나는 희망을 거절한다》 《당신을 찾아서》와 시선집 《흔들리지 않는 갈대》 《수선화에게》, 동시집 《참새》를 냈다.
 
  시인의 대표작이자 시선집의 표제인 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소개한다. 이 시는 국정교과서 시절, 중학교 국어교과서에 실렸다.
 
  ‌‌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그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그루 나무의 그늘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햇빛도 그늘이 있어야 맑고 눈이 부시다
  나무 그늘에 앉아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는 햇살을 바라보면
  세상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나는 눈물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눈물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방울 눈물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기쁨도 눈물이 없으면 기쁨이 아니다
  사랑도 눈물 없는 사랑이 어디 있는가
  나무 그늘에 앉아
  다른 사람의 눈물을 닦아주는 사람의 모습은
  그 얼마나 고요한 아름다움인가
 
  -정호승의 ‘내가 사랑하는 사람’ 전문
 
   정호승의 ‘국화빵을 굽는 사내’와 ‘촛불’
 

국화빵. 사진=조선일보DB


  누군가 아파하고 눈물 흘리는 사람을 위로하는 시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다. 어둠(그늘)을 벗어던진다고 행복해질 수 없다. 자신의 어둠을 사랑할 수 있는 자만이 남의 그늘에 손 내밀 수 있다. 

그늘이 있는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자가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다. 정호승 시인의 시를 읽으면 누구라도 사랑에 빠질 수 있다.
 
  ‌‌당신은 눈물을 구울 줄 아는군
  눈물로 따끈따끈한 빵을 만들 줄 아는군
  오늘도 한강에서는
  사람들이 그물로 물을 길어 올리는데
  그 물을 먹어도 내 병은 영영 낫지 않는데
  당신은 눈물에 설탕도 조금은 넣을 줄 아는군
  눈물의 깊이도 잴 줄 아는군
  구운 눈물을 뒤집을 줄도 아는군
 

 -정호승의 ‘국화빵을 굽는 사내’ 전문
 
 

시 ‘국화빵을…’에 나오는, ‘그물로 물을 길어 올리는데/ 그 물을 먹어도 내 병은 영영 낫지 않는데’ 구절에 자꾸 눈이 간다. 

‘그물’을 ‘그 물’로 띄어 쓰니 상상력이 팽창한다. 그물로 물을 길어 올릴 수 없으니 물을 마실 수 없다. 마음의 병이 나을 리 없다. 

채워지지 않는 갈증을 위해 그물로 물을 길어 올리는 어리석은 일상을 더듬어본다.
 
  시 ‘촛불’은 늙고 병든 세상의 모든 부모를 위한 노래다. 

아흔다섯 생신날, 시인은 생일 케이크에 초 하나를 꽂았다. ‘마지막 토해낸 숨으로’ 촛불을 끄신 어머니를 향해 시인은 ‘촛불은 꺼질 때 다시 타오른다’고 혼잣말을 한다. 그러곤 꺼진 어머니의 초를 시인의 가슴에 다시 꽂는다.
 

정호승 시인
  ‌‌어머니 아흔다섯 생신날
  내가 사 들고 간
  생일 케이크에 초를 하나만 꽂고
  단 하나의 촛불을 켰다
  생명도 하나
  인생도 단 한번이라는 생각을 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그렇게 하는 게
  어머니가 더 아름다워 보였다
  이번이 어머니의 마지막 생신이라는 생각에
  눈물로 생신 축가를 불러드리자
  어머니가 마지막 토해낸 숨으로
  촛불을 훅 끄시고
  웃으셨다 쓸쓸히
  촛불은 꺼질 때 다시 타오른다고
  어머니 대신 내가 마음속으로 말하고
  촛불이 꺼진 어머니의 초를
  내 가슴에 꽂았다.
 
  -정호승의 ‘촛불’ 전문
 

  개가 물어뜯은 시집, ‘시님’의 두 번째 시집
 

조경선 시인


  지난 4월 간행된 조경선 시인의 《개가 물어뜯은 시집》(달아실출판사 刊)에 실린 동명의 시는 참 재미있다. 

실제로 개가 시집을 물어뜯었을 리 만무하다. 

개가 시집을 식용으로 먹을 수도 없다. 그런데 왜 개가 물어뜯었을까. 개가 비평가일 수도 있고 성가신 독자들일 수도 있다. 소(小)우주, 소 은하계와 다름없는 ‘시집’에 대한 개의 공격은 잔인하다. 어처구니없다. 읽어보고 물어뜯는다면 그래도 낫다.
 
  ‌‌우편으로 배달된 시집을 옆집 개가 물어뜯고 있다
  제목은 찢겨져 나갔고
  누가 보냈는지 알 수 없다
  시 제목이 반쯤 남아 땅 위에 너덜거린다
 
  한 끼에 9,000원짜리 독상
 

조경선 시인의 시집 《개가 물어뜯은 시집》(달아실).
  침 흘리고 먹다 버린 첫 장 시인의 말이
  마당에 흩어져 있다
  귀퉁이 구겨진 시인의 얼굴은 웃는다
  시집을 먹어 치운 개가 맛을 아는지
  양지바른 마당에 앉아 꼬리를 흔든다
 
  배불리 먹었을까
 
  씹어 넘기다가 맛있는 부위만 골라 핥았을까
  유명한 견이니
  겉장만 보고 가려서 맛보았겠지
  간신히 찾아낸 이름 한 글자와 제목이
  대문 앞에 적멸로 앉아 있었다
 
  -조경선의 ‘개가 물어뜯은 시집’ 전문
 
 

 

《개가 물어뜯은 시집》의 발문을 쓴 시인 장석주는 이런 평을 했다.
 
  ‘개가 함부로 물어뜯은 시집이란 오늘날 시가 처한 문화의 변방으로 자꾸 밀려나는 저 난처한 위상에 대한 풍자가 아니었을까?’라고.
 
  아무도 안 읽는 시집을 낸 시인의 길도 고달프지만 종교인의 길도 험난하긴 마찬가지다.
 

해인스님


  지난 5월에 나온 해인스님의 두 번째 시집 《비로소 별이 되는가?》(천년의시작 刊)를 읽어보았다. 

‘시님도 마이 아프다’가 눈에 띄었다. 경북 북부 지방의 방언이 고스란히 담겼다. ‘시님’은 ‘스님’이고 ‘마이’는 ‘많이’다.
 
  중이 되는 데 10년, 중물 드는 데 10년, 그 중물을 유지하는 데 10년, 중물을 다시 빼는 데 10년이 걸린다고 시인은 말한다. 그런데 강산이 네 번 바뀐 뒤 ‘고생 끝에 병만 온다’고 탄식한다.
 

 

스님은 육식을 못 한다. 안 한다. 

지인이 찾아와 “돌아가실라 캄니까. 단백질을 드시야 됩니더”라고 다그친다. 

 

누가 생선 한 마리를 사 왔다. 

누가 볼세라 사방 창문을 열고 연기를 환기시키느라 하루 종일 벌벌 떨었다. 

‘벌벌 떨었다’는 표현에 울컥해진다. 그런데 실제로 그 생선을 스님이 먹었는지는 알 수 없다.
 

해인스님의 시집 《비로소 별이 되는가?》(천년의시작).
  ‌‌1
  중 되는 데 10년
  중물 드는 데 10년
  중물 유지하는 데 10년
  중물 빼는 데 10년
  강산이 네 번 바뀌고
  고생 끝에 병만 와
  ‌연락처에 침 잘 놓는 한의원부터, 희망통증의학과, 속편한내과, 밝은세상안과, 굿모닝피부과, 사랑니치과까지
  병원 번호만 빼곡하다
 
  2
  “시님 돌아가실라 캄니까”
  “살라 캄니더”
  “시님이 드시는 밥, 빵, 떡, 마카 탄수화물뿐입니더
  그라이 단백질을 드시야 됩니더”
 
  3
  ‌조주, 그가 주는 차 한 잔 받아 마신 납자들처럼 허우적거리며 생선 한 마리 사 왔다. 한 토막에 만 원짜리 향 한 통이 연기로 사라지고, 사방 창문을 열고 환기시키느라 하루 종일 벌벌 떨었다
 
  선 밖으로 색칠해도 괜찮다고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다.
  인간답게 사는 것이 신통(神通)인 것을
  시님도 마이 아프다
 
  -해인스님의 ‘시님도 마이 아프다’ 전문
 

동안거를 맞아 스님들이 각자 벽을 바라보며 수행하고 있다. 사진=조계종 제공


  해인스님은 중학교 1학년 때 학교 교지에 단편소설을 발표하면서 일찍부터 문재를 뽐냈다고 한다. 문인이 되지 않고 출가하여 스님이 됐다. 동국대 고고미술사학·불교학과와 충북대 대학원에서 철학을 전공(철학박사)했다.
 
  누구도 배울 만큼 배운 학자 스님에게 ‘선 밖에 색칠해도 괜찮다’고 일러주지 않았다. 강산이 네 번 바뀐 뒤에야 ‘인간답게 사는 것이 신통(神通)인 것을’ 알게 되었다.
 
   좋은 시 한 편을 쓰기 위해…
 

박별 시인


  지난 7월 박별 시인의 첫 시집 《내가 만일 시인이라면》(새한국문학회 刊)이 나왔다. 

시인의 연배는 짐작건대 60대 후반 이상이다. 

시인 소개 글의 ‘41년간 학교 울타리 안에서 지내 황조근정훈장을 받고…’라는 표현에서 유추할 수 있다.
 
  시인은 좋은 시 한 편을 쓰기 위해 “십여 년 좋이 넘게 기다려 왔다”고 말했다. 10여 년의 시작(詩作) 세월이 짧았다고 할 수도, 길었다고 할 수도 없다. “매일 시를 위하여 새벽을 맞이하고 사유의 길로 들어섰다”는 고백이 감동을 준다.
 

박별 시인의 시집 《내가 만일 시인이라면》(새한국문학회).


  ‌‌1
 

 말(言)이 절(寺)로 가야 하는 시(詩)
  시를 찾아 마음을 다스립니다
 
  아이들의 잰걸음 속에도  

  시가 통통 뜁니다
 
  가까운 산등성이 나무 팔다리
  초록으로 살아 수놓는 시
 
  조팝, 이팝, 오동나무 보랏빛 꽃들이
  시가 되어 날립니다
 
  2
  해는 져서 어스름 내려와
  또 시가 그리워집니다
 
  아기가 태어나고 할머닌 떠납니다
  기쁨과 매운 눈물의 시 한 편
 
  누가 놓고 간 시인가
  눈썹달 하나
 
  어둠을 걷어낸 해님도
  또 시를 놓고 갑니다
 
  -박별의 ‘누가 놓고 간 시(詩)’ 전문
 

  진짜 시인이 되려면 종교에 귀의하듯 ‘버려야’ 한다. 단어를 버리고 문장을 비워야 한다. 그런 뒤에 찾아오는 행간(行間)의 충만함을 즐겨야 한다. 

마음을 다스리는 죽비 같은 시, 아이들의 잰걸음 같은 통통 튀는 시, 신록의 나무처럼 ‘초록으로 살아 수놓는’ 시도 있다. 

어스름이 내려 눈썹달이 뜨고 다시 해님이 돋을 때 시가 찾아오기도 한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시가 저절로 되는 법이 없다. 영혼을 깎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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