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거친호흡 몰아쉬며 ^^ 굽이치는 산맥넘어 손의 자유, 발의 자유, 정신의 자유를 찾는다. 기억은 희미해지기에 이곳에 기록을 남긴다
MTB등산여행

완역 정본 택리지

by 한국의산천 2018. 11. 17.


최고의 인문지리서  

'완역 정본 택리지'

 

이중환 지음

안대희 · 이승용 외 옮김


조선의 혼탁한 정치

이중환의 험로 인생이 택리지로 탄생하다


나는 이책에서 살만한 땅을 가려 살고자해도

살 만한 땅이 없음을 한스럽게 여겨 이를 기록했을 뿐이다.

(발문에서-이중환)


누가 청담의 문장을 기리려는가?

누가 청담의 고심을 느끼려는가? 


29969



쌀쌀한 토요일

라이딩을 마치고 귀가하니 

어제 밤에 주문한 책이 배송되어 있었다


이번에 내용까지 일부 바로잡아 나온 신간


최고의 인문지리서  

'완역 정본 택리지'


국토지리에 관한 지식과 정보를

국가가 비밀스럽게 관리하고 문헌을 편찬하던 시대에,

지은이는 완전히 새롭고 창의적인 시각으로

국토지리를 해석하고 평가한 저술을 했다.


그로부터 250여 년동안 독자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고

이 책을 능가하는 저술이 나오지 않았다고 할 만큼 획기적이고 독창적인 책이다. 

 

현재 청담 이중환이 쓴 택리지는 원본이 남아있지 않다.

하지만 택리지는 팔역지나 가거지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면서 주로 필사본을 다시 필사하는 식으로 전해져 왔다.

200종이 넘는 복사본, 각기 다른 이본의 존재가 입증하듯 매우 독창적인 책임에는 틀림이 없다.


역자의 말에 따르면

현재 널리 읽히고 있는 《택리지》는 모두 1912년 최남선이 번역한 광문회본을 저본으로 삼고 있는데,

광문회본은 수많은 이본 중의 하나에 불과해 대표성이 떨어지고

게다가 최남선은 일부 내용을 삭제하거나 첨가하여 택리지의 내용을 일부 왜곡했다고 한다.

즉, 우리가 지금까지 읽어온 《택리지》는 엄밀한 학술적 검토를 거치지 않은 텍스트이므로 

지금에 이르러 완역 정본이 나온것이다라고. 


우리나라 최고의 인문지리서

택리지


18세기 후반

당쟁의 반대파라는 이유만으로 관직에서 물러나고 옥에 갇히고 유배를 당한 이중환

원치 않는 자유인이 되어 전국방방곡을 돌아보며 울분을 삭혔을 것이다.


"나는 이책에서 살만한 땅을 가려 살고자해도 살 만한 땅이 없음을 한스럽게 여겨 이를 기록했을 뿐이다.

아 ! 실제의 일은 국가의 법령과 제도이고 허구의 일은 아주 작은 겨자씨속에서 거대한 수미산을 집어 넣는 것이다.

훗날에는 틀림없이 그 차이를 분별하는 사람이 나타날것이다". (발문에서-이중환)


누가 청담의 문장을 기리려는가?

누가 청담의 고심을 느끼려는가? 



"도대체 어디로 가야 먹고살 수 있단 말인가!"

그것은 실존적인 질문에서 비롯된 책이었다.

조선 후기 실학자 이중환(1690~1756)은 30대 나이에 당쟁의 희생물로 전락해 정계에서 축출됐다.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것은 물론, 서울에서 살기도 힘들어졌다.

이 절박함 때문에 그는 전 국토를 물자·교통·인심·산수 같은 다면적 시각에서 분석하고

'살 수 있는 곳(가거처·可居處)'이 어디인지 찾아내는 책을 썼다. '택리지'다.


하지만 '택리지'의 결론에는 지식인의 절망감이 드리워져 있다.

몰락한 사대부가 고난을 겪는 건 구조적 문제이나, 이젠 조선 전체가 각박해져 '살 수 없는 땅'이 돼 가고 있다는 자괴감이다. 

'예(禮)는 부(富)를 쌓지 못하면 제대로 설 수 없다'는 저자의 말은 당대 조선 현실에 대한 처절한 토로였을 것이다.


이중환

예상치 않던 인생 행로가 바뀌면서 원치않던 자유인이되어 대한민국 구석 구석을 빠짐없이 세세하게 돌아보고

기록해 놓았는지 그저 놀라울 다름이다  

 

나는 산행과 여행 또는 사진촬영을 가기전에 택리지에서 그곳의 인문지리를 읽고 길을 나선다

참고 할만한 유용한 정보가 있기 때문이다


여러번 읽은 책이지만 이번에 신간이 또 나왔기에 구입했다

내일은 일요일이기에 오늘 밤은 이 책을 보며 밤을 새울거 같다.


▲ 완역 정본 택리지 양장본 ⓒ 2018 한국의산천


몰락한 사대부 이중환, 조선 팔도의 인문 지리를 논하다


- 조선시대 가장 독창적인 인문지리서, 《택리지》의 가치


《택리지》는 국가가 국토지리에 대한 지식을 독점하던 시대, 개인이 지리를 논했다는 점에서 아주 획기적인 저작이다.

이전의 지리서는 모두 관이 주도해서 나온 관찬 지리서로서 18세기 이후 크게 바뀐 조선의 실상을 반영하지 못했다.

반면 《택리지》는 당대의 산업과 교통, 문화의 구체적 현실과 변화된 실상을 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조선 팔도의 정치와 역사, 경제와 사회, 문화와 전설, 산수와 명승 등을

인문·사회·경제적 관점에서 평론한 이중환 개인의 독특한 관점이 잘 드러나 있어 인문지리의 명저로 꼽힌다.


《택리지》는 출간 직후 어떤 책보다도 빠르게 필사되고 읽혔는데,

지금까지 전해지는 이본만 200여 종에 이르러 그 인기를 입증한다.

이 책을 통해 이중환은 당대의 국토지리에 대한 궁금증을

시원하게 해소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지리에 대한 새로운 욕구를 태동시켰다.


이중환은 30대의 젊은 나이에 당쟁으로 몰락해 경제적 궁핍에 시달렸다.

당시 사대부가 관직을 잃는다는 것은 생활고로 서울에서의 삶이 힘들어지는 것은 물론,

평생 생계를 걱정해야 할 처지로 전락함을 의미했다.

그가 사대부임에도 경제적 요건을 갖춘 지역을 최적의 주거지로 꼽고,

행정 중심지보다 경제 중심지에 더 큰 비중을 두어 소개하는 등

끈질기게 ‘어디서 먹고살 수 있을까?’라는 질문과 답을 던진 데에는 이런 배경이 자리한다.


그는 전 국토를 지역과 주제로 나누고 행정과 교통, 물산, 풍속, 인심, 역사, 인물, 산수 등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보았는데,

살 만한 곳과 그렇지 못한 곳의 기준을 특히 농지의 비옥함, 물자의 유통,

교통의 편리함, 특용작물의 생산, 시장의 활성화 등 실리적인 요건에 큰 비중을 두었다.

이처럼 그는 《택리지》에서 자신이 겪은 고난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조선 후기 사회가 안고 있는 구조적 문제임을 지적하고, 대안까지 제시했다.

그와 같은 처지의 사대부들에게 이 책은 실용서이자 자기계발서나 마찬가지였다.


무릇 산수란 심신을 즐겁게 하고 감정을 발산하게 하는 것이다.

사는 곳에 그런 산수가 없으면 사람은 거칠어진다.

그러나 산수가 좋은 곳은 생리가 변변치 않은 곳이 많다.

사람인 이상 자라처럼 제 등껍질을 이고 살거나 지렁이처럼 흙을 파먹고 살 수는 없으니,

그냥 산수만을 취하여 삶을 영위할 수는 없다.

그러니 차라리 기름진 땅과 넓은 들이 있어 지리가 좋은 곳을 선택하여 집을 짓고 살면서,

10리 밖이나 반나절 거리에 경치가 아름다운 산과 물을 두고, 생각이 날 때마다 가서 시름을 풀거나 하루 이틀 묵고 돌아오는 것이 낫다.

이야말로 훗날까지 이어갈 만한 좋은 방법이다. -[복거론] ‘산수’ 중에서(양장본 345쪽)


그러나 사대부는 이런 일을 해서는 안 된다.

다만 생선과 소금이 유통되는 곳을 잘 찾아서 배를 대고 이익을 남겨서 관혼상제 네 가지 예식에 드는 비용을 장만한다면 해 될 일이 있겠는가?

-[복거론] ‘생리’ 중에서(양장본 243쪽)



'택리지'는 주거지 선택의 지침서일 뿐만 아니라

탁월한 명승 탐방의 안내서로 첫손에 꼽히는 고전이다.

지금까지도 우리나라 산수를 한 권으로 잘 정리해

여행에 참고할 수 있도록 한 책으로 이를 대체할 만한 것이 없다.


국내 최초 완역 정본 《택리지》의 탄생


- 한국 대표 고전 정본 작업의 중요성
안대회 교수는 한국 고전의 당면과제로 정전화(正典化)와 정본화(定本化)를 들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고전을 가려 뽑아 시대를 초월해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저술을 목록화하고,

그와 동시에 표준이 될 만한 정본화 작업을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정본화 작업은 고전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기초이자, 제대로 된 학술연구와 역주 작업을 위한 토대이다.


한국 고전의 정전화와 정본화라는 큰 과제 앞에서, 안대회 교수팀은 하나의 숙제를 마쳤다.

인문지리의 정전이자 200여 종의 이본이 난무하는 《택리지》의 정본 작업이 그것이다.


《택리지》는 현재까지 수많은 이본이 전해져 그 인기와 가치를 입증한다.

조선 후기에 나온 저작으로 이렇게 많은 이본이 전해지는 책은 드물다.

많이 읽히고 필사된 덕에 다른 많은 자료의 출처 역할을 해왔지만, 정작 《택리지》의 정본 작업이 이루어진 적은 한 번도 없다.

현재 널리 읽히고 있는 《택리지》는 모두 1912년 최남선이 번역한 광문회본을 저본으로 삼고 있는데,

광문회본은 수많은 이본 중의 하나에 불과해 대표성이 떨어진다.

게다가 최남선은 일부 내용을 삭제하거나 첨가하여 택리지의 내용을 일부 왜곡했다.

즉, 우리가 지금까지 읽어온 《택리지》는 엄밀한 학술적 검토를 거치지 않은 텍스트이다.




안대회 교수는 2012년 아홉 명의 연구자들과 첫 세미나를 시작한 이래,

오랜 시간에 걸쳐 수많은 이본 중에서 23종을 선정하고 교감하여 마침내 정본 텍스트를 확정해 번역했다.

23종의 선본 중에는 그동안 학계에서 검토하지 않았던 다수의 선본이 새롭게 포함되어 있다.

중요한 교감 사항은 꼼꼼히 정리해 《완역 정본 택리지》(양장본)에서 원문과 함께 700여 개의 주석으로 달았다.


《완역 정본 택리지》가 기존의 택리지와 가장 크게 다른 점은 편목과 구성을 새롭게 했다는 것이다.

현재 거의 모든 번역문과 논문에서는 사민총론, 팔도총론, 복거총론, 총론, 저자 발문이라는 편목과 구성을 따르고 있다.

그러나 정본 작업 과정에서 이 편목은 극소수 사본에나 나타나는 것임을 확인해

《완역 정본 택리지》에서는 원문의 의도에 맞게 서론, 팔도론, 복거론, 결론, 발문이라는 새로운 편목과 구성을 내세운다.


‘발문’에도 오랜 기간 정본 작업을 하면서 발굴한 사료를 엄선해 실었다.

홍중인, 정약용, 정인보 등이 쓴 발문이 실려 있는데,

일제강점기 학자 정인보가 국한문혼용체로 쓴 발문은 시간이 흘러도 여전한 택리지의 가치를 입증해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그 밖에 《택리지》에 실린 이야기로 유명한 ‘함흥차사’ 관련 기사는 원본에는 실려 있지 않다고 판단하여 싣지 않았다.

이처럼 크고 작게 잘못 전해져온 번역까지 대폭 바로잡았으니, 《완역 정본 택리지》는 가히 제대로 된 《택리지》의 첫 탄생이라 할 수 있다.


이제 굳이 멀리 사마천이나 역도원의 저술과 장점을 비교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조선의 지리서로서 고금에 이보다 훌륭한 저술은 없음이 사실이다.

고산자古山子 김정호의 상세하고 정확한 《대동지지大東地志》와 더불어 후세에 전해질 만한데,

고산자의 ‘지지地志’가 수학적이라면 청담의 저술은 철학적이고, 고산자의 ‘지지’가 조용히 멈춰 있고 지역을 나눈 것이라면

청담의 저술은 살려서 드러내고 융합하여 꿰뚫은 것이다.

지역과 관습에 의하여 숙성된 팔방의 풍속과, 물산을 교환하고 도로로 운송하는 대세와, 주목하고 중시해야 할 관방關防과 요충지,

그리고 절해고도의 빼어난 명승까지 무엇 하나 데면데면 다룬 곳이 없다.

-[발문] ‘청담 이중환의 《택리지》 해제’ 중에서(양장본 382쪽)



저자 이중환 (李重煥)
자는 휘조輝祖, 호는 청담淸潭 · 청화산인靑華山人이다.

조선 영조 때 시인이자 학자로, 많은 고위 관료와 학자,

문인을 배출하고 남인南人 당파를 주도한 여주 이씨 명문가 출신이다.


24세에 문과에 급제하여 관료의 길에 들어섰으나 당쟁에 희생되었다.

30대 중반 이후 관계에서 완전히 밀려나 한평생을 철저하게 배척당한 채 지냈다.

1750년대 초에 몰락한 사대부의 체험과 시각을 바탕으로

조선의 지리와 경제, 자연을 고찰한 《택리지》를 저술하여 후대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택리지는 조선 후기 실학자 이중환이 쓴 인문지리서로 살 곳을 고르는 방법을 담은 책으로 

주거지 선택에 있어 지리와 생리, 인심, 산수 네 가지 기준을 제시한다.

지형과 자연환경은 물론 상업과 유통 경로를 중요시한 저술로

오늘날에도 이중환의 혜안은 큰 의미로 다가온다 





택리지

다시쓰는 택리지

완역 정본 택리지


내 책장에도 세종류의 택리지가 있다


택리지를 읽으면 행복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나라 방방곡곡을 구석 구석 여행 할수 있으니 말이다

이중환은 18세기에 정치사건에 연루되어 나이 37살 때 절해고도에 유배당했다.

전국 방방곡곡을 떠도는 나그네 신세가 되었던 것이다.

그로서는 슬픈 생애의 시작이었지만 이때부터 그의 생애는 자유인이었다. 그의 방랑은 지금 우리에게 큰 행복으로 다가온다.


이 책을 읽다보면 그 세상이 내 눈앞에 환하게 펼쳐진다.

조선팔도를 다 다루다보니 어느 한곳에 관한 기록은 아주 짧으나 새기면 새길수록 담긴 뜻은 너무도 깊다.

지금보아도 그대로인듯한 자연과 지형을 정밀하게 묘사하고 있는 혜안이 놀랍기만하다.



목차

해제 안대회
《택리지》 서 이익
《택리지》 서 정언유


서론

팔도론
 팔도론 서설
 평안도
 함경도
 황해도
 강원도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경기도


복거론
 복거론 서설
 지리
 생리
 무역과 운송
 인심
 산수
 산천의 큰 줄기
 명산과 명찰
 도읍과 은둔
 바다 위의 산
 영동의 산수
 네 고을의 산수
 강가의 주거지
 시냇가의 주거지


결론
발문
《택리지》 후발 - 이중환
《택리지》 발 - 목성관
《택리지》 발 - 목회경
《팔역가거처》 발 - 이봉환
《택리지》 발 - 홍중인
《택리지》를 보고서 아이들에게 써서 보여주다 - 홍귀범
 발 《택리지》 - 정약용
 청담 이중환의 《택리지》 해제 - 정인보

부록 병조좌랑 이중환 묘갈명 - 이익
원문 (보급판에서는 생략)

찾아보기(색인)





팔도의 지역별 산수와 명승, 전설을 고지도와 함께 한 권에 담다


- 지금 이 시점에도 유효한 국내 산수유람 안내서
《택리지》는 주거지 선택의 지침서일 뿐만 아니라 탁월한 명승 탐방의 안내서로 첫손에 꼽히는 고전이다.

지금까지도 우리나라 산수를 한 권으로 잘 정리해 여행에 참고할 수 있도록 한 책으로 이를 대체할 만한 것이 없다.


이중환은 평안도와 전라도를 제외한 지역을 30여 년에 걸쳐 직접 탐방한 경험을 토대로

어느 지역의 어떤 산과 강, 누정과 명소, 문화유적 등을 찾아가면 좋을지 안내한다.

조선 팔도에서 주요한 산수와 명승을 소개하는 것은 물론,

 특별히 명승이 많은 영동 지역과 관북, 충북의 단양 주위 명승지는 따로 정리해 설명했다.


이에 더하여 《정본 완역 택리지》는 고지도를 아낌없이 실어

이중환이 명당으로 꼽거나 비중 있게 설명한 지역을 직접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독자들은 엄선한 고지도를 통해 18세기 조선 시대 국토의 모습을 확인하고,

지금의 지도와 비교해보는 재미도 톡톡히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이중환은 구비전설이 현지인의 삶과 의식을 파악하고 지역적 색채를 드러내는 요인이라 보고,

전국 각 지역에 분포하는 구비전설을 적극적으로 채록해 담았다. 큰 구비전설만 꼽아도 40여 가지나 된다.


전설을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한 것은 20세기 이후의 일이라,

《택리지》는 20세기 이전 가장 오래되고 신뢰할 만한 구비문학의 보고라 할 수 있다.

《완역 정본 택리지》(양장본)는 여기에 자세한 주석을 달아 내용과 출처를 꼼꼼히 밝혔다.




책 후반부 '발문'에 덧붙인 이중환의 최후 한마디를 곱씹어봐야 한다. (양장본 385쪽)


"옛사람이 "예절이니 음악이니 하는 말이 어찌 옥과 비단 종과 북만을 가르키는 말이랴?"라고 했다.

나는 이책에서 살만한 땅을 가려 살고자해도 살 만한 땅이 없음을 한스럽게 여겨 이를 기록했을 뿐이다.

글을 살려서 읽을 줄 아는 분이라면 문장 밖에서 참뜻을 찾아보는 것이 좋으리라.


 아 ! 실제의 일은 국가의 법령과 제도이고 허구의 일은 아주 작은 겨자씨속에서 거대한 수미산을 집어 넣는 것이다.

훗날에는 틀림없이 그 차이를 분별하는 사람이 나타날것이다".


치우치고 사사로운 당파의 견해를 뿌리째 뽑아버린 뒤라야 비로소 본 바탕을 찾을 수 있고

본 바탕을 찾은 뒤라야 비로소 사람으로 설 땅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이는 곧 청담이 저술한 근본 취지를 스스로 밝힌 것이다.

불우한 지사가 흉금을 바로 펼쳐냈을 때에 남긴 글과 흩어진 글씨에서 뒷사람이 감회를 일으킬 만하거늘,

하물며 바로 펼쳐내는것 조차 자유롭지 못하여 구구히 저 같은 포석을 하게 됨에랴 !


누가 청담의 문장을 기리려는가?

누가 청담의 고심을 느끼려는가? 


날이 추워진다

이제는 자전거를 고이 모셔두고

카메라 들고 둘레길을 걷고 

걷기예찬을 하며 시간을 보내야겠다


올 겨울에는

열심히 걷고 

책을 많이 읽어야 겠다.

'MTB등산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왕비 노다지를 팔아치웠다 / 고종의 길   (0) 2018.11.21
친구와 라이딩   (0) 2018.11.18
완역 정본 택리지  (0) 2018.11.17
가을의 잔영  (0) 2018.11.17
행복의 비밀 - 백영옥   (0) 2018.11.12
한치령의 사계  (0) 2018.11.10

댓글0